24년 2월호 칼럼 주께로 본문: 골1:24-29 제목: 교회됨의 교회
교회가 있어야 전도도 할 수 있고 선교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가 있어야 예수 믿는 사람도 있게 되고, 선한 일을 위해 모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교회 때문에 세상은 더 빨리 타락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워지는 것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과 단절되거나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말씀하신 “너희는” 이 말은 개인을 포함한 모든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이든 교회이든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것(선한 행실)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에 대해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우리끼리만의 팬덤이 되어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목적은 우리끼리만 잘 되고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꾸고, 어떻게 사는 것이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며, 약하고 배고프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기도하며 관심을 높이는데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문제에 뛰어드는 것이 자기 자신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이다’ 고 말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교회관입니다. 건물로 세워져 있는 교회만이 교회가 아니라 내가 교회가 되어, 내가 가는 곳마다 그곳이 가정이든, 일터이든, 사회이든, 세상이든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경영자이든 노동자이든, 주인이든 손님이든, 의사이든 환자이든, 교사이든 학생이든, 부모이든 자녀이든 모두가 교회가 되는 것을 예수님이 꿈꾸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건물 교회는 많은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움직이는 교회, 삶의 교회, 행동하는 교회, 실천하는 교회, 걸어다니는 교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 개혁만이 유일한 길이고 개혁의 목표는 내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세우기 위한 신앙에 도전하고 모험해야 합니다. 영적 나태함이나 적당하게 처신하는 나약한 신자가 되면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빌1:3-6)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교회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확신’입니다. 내가 교회가 되고,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분토처럼 다 버리고 복음이 필요한 곳, 교회가 필요한 곳이라면 뛰어가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하고 세웠기 때문에 결국 당시 세계 최대의 절대 권력인 로마까지 바꿔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사람의 교회됨이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겠다는 확신이면 우리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1. 지금까지 교회에서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기득권이란 자기들만이 차지하고 있는 힘, 권력, 세력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은 불평등, 무질서, 양극화를 만들어 국가, 사회, 집단의 충돌과 분열을 조장하고 결국 파멸로 가게 만드는 악과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부에도 급속하게 기득권 카르텔이 형성되어 교회 성장과 부흥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판자가 되고, 판단자가 되고, 남을 지시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첫 사랑, 첫 헌신, 첫 열정이 사라진 것입니다. 너무 안일하고 나태해졌고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은 엄두도 못내고 자기 자리만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게 되고 생각도 마음도 좁아져서 편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기득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과 충성을 다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직분이나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이 정말 조심할 것은 신앙생활 오래 할수록 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칠 것을 찾아서 자꾸 고쳐가야 합니다. 처음 예수 믿었던 그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그때의 헌신과 마음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2. 자신을 틀에 가두는 율법주의를 복음으로 날마다 깨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교회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두 번째는 율법주의입니다. 기득권이 ‘자기 권력’을 말한다면, 율법주의는 ‘자기 우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좋고 나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아주 나쁘고 잘못된 것으로 교회를 분열되고 파괴하게 만드는 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무조건 율법에 집착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논쟁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자로 나눠져 있을 뿐, 교회를 세우는 복음이 약한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거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롬5:15)입니다. 교회 세움도 하나님의 은혜(고전3:10)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복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은혜가 사라지고 율법만 남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율법으로 판단합니다. 왜 교회들이 싸우고 재판을 하고 분열이 되고 문을 닫습니까? 정죄, 진노, 저주, 멸망, 심판, 사망은 율법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의, 용서, 사랑, 영생, 하나님나라의 복음입니다.
교회는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율법주의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외식하는 비판자가 되지 말라(마7:1-6)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도구이지,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무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도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이 자신이 교회가 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자신이 교회가 되는 것은 성령이 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행1:4-5 교회가 되려면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행1:8 성령의 능력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내가 하려고 하면 복잡 해지고 어렵게 됩니다. 이제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약속하신 성령 받기를 위하여 기도했고 성령은 그들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