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 칼럼 주께로 본문: 눅 2:25-38 제목: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들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늘 이 맘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뭔가 모를 기대감으로 좋은 것을 기다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기다림’이라는 말이‘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시므온’과 ‘안나’였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나이 많은 사람들 이었다는 것과 누군가를 심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기도해오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일 이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기름 부음을 받은 자 뜻)’에 대한 기다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 환영하고, 기뻐 할 것 같은 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 같은 부류는‘메시아’의 탄생에 기쁨으로 동참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 ‘시므온’과 ‘안나’는 자신들이 기대하며 기다려왔던 그 ‘메시아’를 보게 되었고,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만남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교훈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 두 사람을 기억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사람이 보여 주었던 ‘기다림의 자세’는 그 기다림의 실제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에 너무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탄을 바르게 기다립시다. 사람들에게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의 바른 기다림을 통해 알릴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이들의 기다림은 하나님을 사랑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5, 37절과 38절에 두 사람은 상당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나는 36절에 “나이 매우 늙었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고령의 나이에 이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 그리고 남편을 잃고 84년 동안 혼자 지내며 주야에 금식하며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이 간략한 소개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릴 수 있었던 두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당시의 많은 종교지도자들의 것과 분명 달랐습니다. 이들의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이들이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우리는 분명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성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제사행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기도행위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아기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들 두 사람 외에.. 주님을 뵈옵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최종의 목적지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하려는 많은 준비들이 교회에서 있지만 정작 예수님을 알아보고 축하할 수 있는 교회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준비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또 다른 종교적 절기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둘째, 이들의 기다림은 조국을 사랑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5절, 38절 정말로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계속 발견됩니다. 이들의 민족 사랑입니다. 이들의 행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백성, 곧 자신의 조국을 위로해 달라는 애절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랐다’표현에서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도 벅찬 나이에 자신의 조국과 백성을 염려하며 기도하고 있었던 두 사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조국과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조국과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성탄절과 조국을 사랑함에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은 결코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예수’가 나라를 살릴 유일한 소망, 희망입니다
셋째, 이들의 기다림은 교회를 사랑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7절, 37절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그 성전에서 이들이 한 행위는 분명히 마21: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성전이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이 되지 않고 참 예배의 처소가 되지 못했을 때는 강도의 굴혈이 됩니다.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 되게 하고선 결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고 알아 볼 수 없습니다.‘시므온’과 ‘안나’가‘메시아’를 안고 기뻐하고 있을 때 여전히 한편에서는 자신의 제사를 드리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아기예수는 자신의 종교생활을 방해하는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처소를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는 곳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크리스마스는 주님 없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입니다.
넷째, 이들의 기다림은 영혼을 사랑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30-32절, 38절‘시므온’과‘안나’는 궁극적으로 ‘메시아’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인간의 구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사건이 성취될 것을 보고선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그들이 평상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소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예루살렘의 구속” 이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깊이 사랑합시다. 이 성탄의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는‘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깁시다. 왜 구주께서 오셨는지, 왜 우리가 성탄을 간절히 기다리며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