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주께로 칼럼) 본문: 마26:36-42 제목: 겟세마네 동산까지
*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산을 향하여 오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믿음으로 출발한 3개의 산을 오르는 과정 중 겟세마네동산까지 신앙의 여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시내산 신앙 (출3:1-4)
(출 3: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출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모세가 떨기나무사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받은 산입니다.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았으니 이런 성도의 가치와 기준은 말씀중심입니다.
예: 시골교회 집사가 배 아프자 목사님께 기도 해 달라고 하였다.
기도 받고 감쪽같이 나았고 그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간증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안에 송아지가 없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해도 송아지를 찾지 못하자 하나님은 없다고 하였다.
그는 감정적 신앙에 말씀의 깊이가 없는 얕은 물가의 신앙인 것이다.
2. 변화산 신앙 (마 17:1-4)
(마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 17: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변화산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영적 체험의 현장이었습니다. 예수님 믿으면서
이런 영적 체험도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1500년 전의 모세와 700년전의 엘리야를 만난 베드로는 충격과 황홀경에 빠져서 초막 셋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제자들과 베드로는 대단한 영적 체험을 한 것입니다. 영적 경험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구름사이에서 소리 있어 가라사대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했습니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구름이 떠나고 모세도, 엘리야도 안보이고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했습니다.
(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아무리 영적 체험이 중요하여도 예수 말씀의 권위보다 앞 설수는 없습니다.
3. 겟세마네동산 신앙 (마26:36-42)
(마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마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시내산, 변화산은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되는 산이지만, 겟세마네 동산은 가기 싫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싫더라도, 하나님 뜻이라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겟세마네동산까지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헌신과 섬김과 희생적인 삶을 삽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까지 오르는 신앙의 사람은 심히 적습니다.
이는,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 뜻대로 사는 공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가야할 산은 겟세마네동산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사회를 변화시키고 하나님나라가 확장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순교자의 삶으로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