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4월호(주께로) 김미숙목사칼럼

목사님칼럼

23/3-4월호(주께로) 김미숙목사칼럼

충헌순복음교회 0 137 02.04 00:27

23/4월호(주께로 칼럼) 본문: 3:27-30 제목: 부르심은 계속이다.

오늘은 '소명에 관한 말씀이며, 하나님께 중심이동이 온전하게 이루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중심이동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보냄을 받은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세례 요한은 당시 최고의 권력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거침없이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며 그들을 책망하고 심판을 예고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중심이동이 확실하게 옮겨진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높아질 자리, 얼마든지 자기가 드러나도 될 그 자리에서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의 중심이 바르게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세워주신 특별한 인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중심이동이 잘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바울도 세례 요한 못지않게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는 목적을 말할 때, 자신은 죽는 것이고 그리스도는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심이동이 확실하게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중심은 어떠하십니까? 중심이동이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까?

중심이동이 하나님과, 예수께 온 사람은 소명에 의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는 예언사역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말할 때 '마음에 붙은 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소명의 붙입니다. 소명이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소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반응합니다.

어렵고, 힘들고 불황이고 잘되고 쉽고 호황이든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소명에 충실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명이 확실한 사람이 되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소명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첫째, 소명은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해 줍니다.

본문에서 27-28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 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요한은 분명하게 자신의 본문을 예수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분명히 말했습니다. 요한과 같은 자기인식,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실한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요한의 내면, 중심은 잘 정돈되었기 때문에 그릇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을 기억하십니까?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전에는 그러나 이제는 바울은 과거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면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전에는 소명을 모르는 자로 이제는 소명에 충실한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찾으셔야합니다. 아니면 말씀도, 성령도, 믿음도 잃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인식, 자신의 존재, 자신의 정체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분별되게 살아야합니다. 소명은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둘째 소명은 자신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요한이 등장할 때는 이미 세상은 권력과 밀접한 시기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은 궁정이 아니었고 빈들, 즉 광야였습니다. 믿음이 좋은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로서 경건하게 자란 그는 예수님을 전해야 할 사람으로 광야에서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광야이어야 합니까? 화려하고 웅장하고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도시에서 살지 않고 광야의 홀로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광야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 광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산 것입니다. 소명의 사람은 광야를 즐거워하고 광야를 찾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광야는 고통, 고난의 장소이기에 자연히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는 육체적으로 버티기 쉽지 않은 곳입니다.

광야에 있으면 목마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배고픔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은 환경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을 먼저 선택합니다. 내가 사는 곳이 내가 입은 옷이, 내가 먹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기 위한 것들입니까?

 

셋째, 소명은 자신의 목표를 보게 합니다.

본문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한의 최상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의 선지자로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존재는 목적의식도 분명했지만, 자기의 목표도 확고했습니다. 흥함과 쇠함에 대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크고, 자신은 작다. 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한 것 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소명의 사람이 되는 것은 자기가 주목받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이 주목받지 않도록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의 올무, 자기교만, 자기고집에 잡혀 더 이상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편집증에 걸립니다. 요한은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크게 여기는 것이고, 자신은 낮추고, 작게 보는 것입니다.

소명의 사람은 요한과 같은 목표를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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